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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약해서

2020-03-23 18:00:00     责编:김룡     来源:央广网

글 궁금이 · 방송 전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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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때 한반의 친구가 즐겨 부르던 노래 제목이다. 지금도 가사를 외울 수 있다.

마음 약해서 잡지 못했네 

돌아서던 그 사람

혼자 남으니 쓸쓸하네요

내 마음 허전하네요...

당시 운률도 너무 느리지 않고 기분도 어지간히 돋굴 수 있어 무난하게 불렀던 노래로 모임만 있으면 그 친구의 애창곡이였다. 이렇게 전에는 결혼집이나 환갑집에 가면 “주석”이라고 해서 사회자가 돌아가며 하객들에게 노래를 시켰다. 그러면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했던 대사가 있었으니 “못하는 노래지만 한곡 하겠습니다”였다. 

이렇게 무반주로 부르는 게 정상이였던 노래가 노래방이란 게 생겨나면서 사람들은 가사가 뜨고 반주가 있어야만 노래를 하는 것으로 여기게 된다. 그러다 보니 노래방기계가 없는 장소에서는 노래가 굉장히 어색하고 부담스럽다. 그런데 자중이 또 기어코 듣고야 말겠다면 피해갈 수 없으니 괜히 혼자서 박수를 쳐가면서라도 불러야 한다.

어떤 형태로 하든 사람마다 지정곡이 있었으니 후에는 한국어의 영향을 받아 애창곡 혹은 18번으로 불리웠다. 그런데 저 18번이 또 공교롭게도 일본어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내가 즐겨부르는 노래라는 뜻으로 단어 하나 쓰려니 여러 요소의 영향을 참 많이 받게 된다. 누구나 지정곡이 있으니 지금도 친구들끼리 노래방에 가면 다른 친구의 선곡번호까지 다 외울 정도로 저마다 노래가 고정되였다. 사람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새 노래를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노래방에 가면 번마다 그 나물에 그 밥이다. 그리고 비명문화된 룰이 있어서 웬만하면 다른 사람의 노래를 빼앗아 부르지 않는다. 간혹 그 주인공이 현장에 없을 경우 아무개의 노래라며 대신해 한번 불러보기는 한다.

그나저나 왜 마음 약해서를 제목으로 시작했냐 하면 이 시기에는 구내식당에서 도시락으로 포장해다가 사무실에서 식사를 해결해야 한다. 평소에는 뷔페식이라 알아서 떠다 먹으면 되는데 도시락은 내가 메뉴를 말해줘야 식당 직원이 요구대로 포장해준다. 이날은 료리가 네가지가 있었는데 두가지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식자재가 들어간 료리이다. 그런데 식당에서 사람들이 시킬 때 자기가 싫은 료리 이름을 말해서 그걸 배제하는 게 순서였나 보다. 난 그런줄 모르고 내가 원하는 료리를 말해버다. 그랬더니 식당 직원은 내가 말한 료리만 빼고 싫어하는 나머지 두개를 떠담는다.

이때라도 내가 그게 아니라고 말 할 수도 있었는데 그 말이 또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저쪽에서는 이미 도시락에 담고 있는데 그걸 중지시키고 다른 료리를 담으라고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도시락에 이미 료리즙도 묻었고 그걸 다시 쏟아놓기도 번거러울 것 같다. 그래서 이날은 결국 먹기 싫은 료리 두개만 골라서 점심을 때웠다. 식사사상 다른 선택이 있음에도 꼭 싫어하는 료리만 먹기는 처음이다. 그런대로 기껏해야 점심 한끼를 먹는 일이니 한번만 참으면 된다. 그런데 마음이 약해서 만회할 수 없는 후회를 만드는 일은 성격이 다르다.

“광식이 동생 광태”라는 영화가 있다. 광식이가 7년을 좋아한 녀자가 있었는데 우물쭈물 망설이다가 결국에는 고백을 못하고 녀자는 다른 남자를 찾아 떠난다. 옆에서 쭉 지켜본 동생 광태가 그 녀자를 찾아서 따진다. 형이 7년동안이나 좋아한 걸 알지 않냐고. 그런데 왜 이제 와서 다른 남자와 결혼하냐고. 내 개인적인 생각인데 이때라도 만약 동생인 광태가 아니고 광식이가 직접 만나서 동생이 한 말과 똑 같은 말을 했어도 상황은 역전될 수 있었다. 그런데 가설은 영원히 현실과 다르다. 그녀가 광식이 동생한테 한 말이 아주 인상깊다.

“녀자는 짐작으로만 움직이지 않아요.”

두가지 뜻을 내포하고 있다. 하나는 나도 광식이가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그러나 끝까지 확실한 의사를 표달하지 않는데 나도 기약없는 감정을 막연하게 기다릴 수만은 없다는 뜻이다. 그러면 남자들은 또 너도 알고 있었으면서 먼저 고백하면 어디 덧나냐며 답답해 한다. 그런데 그게 녀자다. 그래서 용감한 자가 미녀를 얻는다는 말도 있고 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는 말도 생겨났다. 

물론 용감했다가 수없이 얻어터지는 일이 대부분이고 열번이 아니라 백번을 찍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지만 마음이 약해서 아예 표달도 하지 않으면 애초에 가능성을 닫아버리는 거로 된다. 그렇다고 갑갑한 나머지 “그래 내가 먼저 고백해 준다” 라고 나오는 주동적인 녀자는 그렇게 많지 않다. 녀자도 거절이 무섭고 그게 체면이 구겨지는 일이라는데서는 남자보다 더 예민하다. 총적으로 서로가 마음이 약하면 서로를 기다리다가 머리가 다 센다.

그렇다고 마음이 약한 게 무슨 그렇게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다. 많은 경우에는 배려심으로 표현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도 저 영예가 가지고는 싶은데 옆의 동료가 더 수요되는 같아서 양보하는 경우도 있고 나도 당직이 싫고 야근이 질색인데 더 딱한 사정이 있는 동료를 위해 아주 밝은 표정으로 대신해 줄 수도 있다. 그럼 일각에서는 그건 약한 게 아니고 착한 것이라고 시정한다. 그래도 좋은데 약하거나 착한 걸 역 리용해서 저 친구는 그냥 저런 사람이라고 응당하게 생각하는 건 량심적으로 가져서는 안 될 자세이다. 

우에서처럼 마음이 약하면 다 차려놓은 뷔페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러나 최소한 식당 직원이 담다가 만 그릇을 내려놓고 다른 새 그릇을 들게 만드는 번거로움은 덜어줄 수 있다. 그 직원도 어느 한 특정 대상만 상대하는 게 아니고 짧은 점심시간에 수십명 수백명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그리고 그 수십명 수백명 마음의 약하고 강한 정도 또한 천차만별이고 표출되는 언행도 들쑥날쑥이다. 그렇다면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의 비위를 맞추는 것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한 사람을 배려하는 것이 훨씬 더 쉽다. 그냥 점심 한때일 뿐이다.

마음 약해서 우물쭈물 하다가 지나가는 기회, 그건 참 아쉬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마음이 독해서 남의 기회까지 빼앗는 것도 바람직한 자세는 아니다. 그런데 세상은 검은 것이 아니면 흰 것인 것만은 아니다. 

약한 마음을 용기 쪽으로 돌리고 독한 마음은 착한 쪽으로 기울이면 언젠가는 약한 것과 독한 것이 중간에서 만나서 서로를 보완하는 아름다운 그림이 펼쳐질 것이다. 

마음이 약한 게 자비심을 가질 일은 아니다.

궁금이

youshengxiangban@126.com

 

    *본문은 작가 개인의 견해일뿐 중국조선어방송넷 위챗 계정의 견해나 립장을 대표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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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때 한반의 친구가 즐겨 부르던 노래 제목이다. 지금도 가사를